길냥이의 보은(?) 2018/02/06 16:40 by 카피올라니

햇님이가 세상을 떠난지 1년 반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다시 개를 기를 것인지 1년 반 동안 합의를 하지 못했다. 남편은 아직도 강사모에 열심히 들락 거리면서

포항에 잭러셀테리어가 나왔네?
포항 너무 멀어.
그럼 이번엔 가까워 부천이야.
저녁 먹고 한 번 가볼까?
......

뭐 이런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대화가 오갔지만 정작 결정의 끄트머리에 가면 다들 발길을 돌리곤 했다. 이유는 한 가지. 집에 사람이 있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 그렇다고 두 마리를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고...... 햇님이를 데려왔을 때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늘 사람이 곁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버렸고 교환학생이니, 유학이니 하는 얘기가 오가고 있는 터라 결국 우리 부부 차지가 될 게 뻔한 일이었다. 남편은 일찍 나가 밤늦게 오고, 나 역시도 예전과 다르게 알바 2개에, 모임에, 운동에 이러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밖으로 도니까 말이다. 우리 좋으라고 데려다 놓고 외롭게 만든다면 그건 안데려오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고 있다.

그러던 차에 딸이 동네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고 그게 거의 1년 반이 되었다. 7.8kg짜리 사료푸대로 이번이 네 번 째니까 꽤 된 셈이다. 우리 빌라 주변과 골목에 사는 냥이들에게 우리만의 이름도 붙여줬다. 호두, 얼룩이, 턱시도. 지난 여름에 다용도실 뒷편 빌라 마당에 사료를 주다가 모기장 여닫는 틈을 타 모기가 집에 출몰하는 바람에 빌라 앞마당으로 사료주는 장소를 옮겨야 했는데 이걸 얘들한테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었다. 냄새맡고 찾아올까? 방을 써붙일 수도 없고 말이지... 이랬는데 하루는 사료를 주다가 얼룩이를 만났다.
" 여기에 이제 밥 못줘. 저~기. 쩌어~기. 앞으로 와. 꼭 와야 돼~"
손짓, 몸짓 섞어서 큰 소리로 떠들었는데 얼룩이는 두 발을 모으고 가만히 앉아서 내가 하는 말을 들었다. 말을 알아 들었는지 그날 저녁부터 빌라 앞마당으로 왔다. 헷갈리지도 않고 바로! 그 날 저녁에.

이번 겨울이 너무 너무 추워서 애들이 걱정됐다. 햇님이가 쓰던 케이지를 안쪽에 뽁뽁이로 다 막고 바닥에 푹신한 쿠션 매트를 하나 깔고 뽁뽁이 이불도 안에 넣어 베란다에 내어 놓았다. 우리 집은 빌라 일층이라 화단이 가깝다. 문을 베란다 벽쪽으로 틈을 살짝 두고 돌려 놓아서 자기들 드나드는게 안보이게 하고 그 앞에 밥그릇도 함께 놓았다. 신경쓰지 말고 추위를 피하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는데 와서 밥만 먹고 도통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베란다 유리 너머로 살짝씩 훔쳐봐도, 아침 일찍 커텐 걷고 건너봐도 와서 자진 않는 것 같았다. 가끔 보면 낙엽이나 까만 먼지 같은게 있는 것으로 보아 잠깐씩 쉬는 장소 정도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얘들이 안오네? 저거 비싼건데.. 그냥 들여놓을까?
아마 따뜻한 곳이 있나보지. 지들만 아는. 누구집 보일러실이라든지...
그러면 다행이고.
이번 주까지도 안쓰면 들여놓지 뭐.

이랬는데 어느 날인가는 보니까 얼룩이와 호두가 그 안에서 웅크리고 붙어서 자고 있는게 보였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몇 일은 그냥 두고 보면서 없을 때(오전에만 온다) 밥만 살짝 주고서 돌아나서려는데.... 깜짝 놀랄 일이......
그 케이지 안에 새의 깃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흑.... 이놈들 새를 잡아먹었구나... 으휴....
사료가 모자랐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담날은 사료를 곱배기로 놓아주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몇 일 전 베란다 유리 너머로 그 집을 들여다 봤을 때 뭔가 거뭇한 게 있었던게 기억난다. 그 때는 얘들이 들어가 자지도 않던 곳인데 새를 잡아서 여기까지 물고 와서 먹었을까?

추리1. 챙겨주는게 고마워서 나를 대접하느라 새를 가져왔다가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몇 일이 지나니까 지들끼리 나눠 먹음. 그게 아니면 저녁에 잠자는 아지트는 따로 있는데 굳이 여기에 새를 가져올 이유 없음. 사료도 있는데...

추리2. 사료를 훔쳐먹는 새를 응징함. 가까운 케이지에 보관하다가 나눠 먹음.

뭘까? 뭐니? 얘들아... 길냥이맘들 얘기 읽어보면 냥이들이 가끔 쥐도 잡아다가 신발에 넣어 놓는다고 하던데, 그런거니? 하아... 사료만 먹으라거나 채식만 하라고 할 수 없지만 새도 됐고, 쥐도 됐다. 걔들 그냥 겁만 주면 안되겠니... 이걸 또 어떻게 전달하지???? 충분히 고맙고, 난 됐다고 ㅠㅠㅠㅠㅠㅠ





덧글

  • 명품추리닝 2018/02/06 20:54 # 답글

    저희 집과 비슷한 고민을 하시네요.
    엄마랑 매일 유기견 들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고 길냥이 밥주는 거...
    달팽이님네 길냥이들도 겨울 잘 보냈으면 좋겠어요.
  • 카피올라니 2018/02/06 22:41 #

    오늘 옆동네에 갔다가 길가에 빈 고양이집을 밖에 내놓은 걸 봤는데... 날이 너무 추우니까 걱정되네요. 물이 다 얼어서 물도 못마실 것 같은데...
  • 밥과술 2018/02/12 15:20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저희 집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데 생활패턴이 허락을 안해서...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할 따름입니다.
  • 카피올라니 2018/02/13 13:35 #

    집을 자주 비우면 키우시기 힘들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때...
    쏟는 정성이나 시간 이상으로 되돌려 받는 게 많아서 조건만 된다면 함께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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