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생활 2016/05/26 18:15 by 카피올라니

요즘 아주 건조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갑자기 출퇴근하는 생활을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이제는 나이가 들만큼 들었으니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지니게 된 것이야... 라고 생각할 뻔 했으나 방 청소 안하는 딸의 방에 들어가서 방 한가운데에 정리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모아서 탑을 쌓아놓고 나온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닌 것으로... ^^;;

하는 일의 내용 중에 서원 현황을 파악하느라 할아버지들과 전화 통화하는 일이 잦은데, 대부분 귀가 잘 안들리니 크게 얘기해 달라는 주문을 받아 기본 두 번  씩 얘기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보니 쉬고 싶고 자고 싶은(혼자) 욕구 이외의 나머지 인간의 욕구에 대해서는 데면데면해진다. 텔레마케터들이 존경스러운 수준. 이렇게 체력소모가 큰 일을 하다보니 초콜렛과 목캔디와 꿀차를 마셔가며 스트레스를 달래보지만 드디어 오늘 목이 쉬어버렸다.

목감기도 살짝 있긴 했지만 오후로 갈수록 목이 잠겨서 말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자 그냥 일찍 퇴근해 버렸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인 것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 부우연 하늘을 쳐다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건조하다못해 속이 화르륵 타 버릴 것 같은 시 하나가 생각난다.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가,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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