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메이블 이야기 (H is for Hawk) 2016/01/13 13:04 by 카피올라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동물이나 식물, 자연과 교감하는 이야기에 쉽게 매료된다. 내가 너무 문명 속에서 안락함을 누리고 사느라 인간을 제외한 존재들과 교통하는 방법을 몰라서 일수도 있고, 그와 관련된 영혼이 성장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뱀. 징그러운거. 고양이. 귀여운거. 벌레. 지네. 개미....이러다가 강아지 한 마리를 집안에 들이면서 부터 새로운 세상을 본 기분이었지만 <메이블 이야기>를 쓴 헬렌 맥도날드를 만나니 이런... 이렇게 영롱하게 처절하다니...

이 책은 세 가지의 이야기가 교직되고 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 그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는 어릴 적 꿈인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만난 <참매>라는 책을 쓴 T.H. 화이트에 대한 애증어린 전기.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온 뒤 헬렌은

비행기들은 여전히 착륙하고, 자동차들은 여전히 달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고 일했다. 이런 것들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몇 주간 나는 둔하게 달궈진 쇳덩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달군 쇳덩이 같아서, 오히려 몸은 차디찬데도 침대나 의자에 몸을 눕히면 곧바로 활활 타버릴 것만 같았다.(34p)

장례식 직후 제정신을 지키기 위한 광기라고 표현하는데, 작가의 이런 표현들..

그래도 참매는 아름다웠다. 화강암 절벽이나 소나기 구름처럼 아름다웠다. (38p)

작가이자 시인이고 일러스트레이터.역사학자. 동물학자. 철학자다. 어떻게 이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너무 잘쓴다. 활활 타는 듯한 정직한 감정 표현, 섬세한 묘사, 전혀 알지 못했던 야생의 세계를 그녀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더듬거리며 나아가다가 비상하는 메이블을 따라 스코트랜드 광활한 평원의 날선 바람을 맞는 느낌이다.

또 한 사람. T.H. 화이트.
화이트가 매를 꿈꾼 이유를 보여주는 구절을 보면

독립- 자족한 상태- 은 우리가 생물에게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아량, 유일한 자비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남의 뼈에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매는 나로부터 안전할 뿐 아니라 나도 매로부터 안전하다. (74p)

이 구절이 매잡이로서 멋진 말이었고 그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줬지만 학대받던 어린시절을 가진 그는 그 트라우마를 고스에게 그대로 투사한다. 매를 굶기고 폭식하기를 반복한다. 또 그런 자신을 못견딘다. 화이트가 썼다는 <참매>가 번역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메이블이야기>는 독특하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책이다. 책도 책이지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작가가, 그 작가의 어린시절이, 그런 아이를 키운 부모가, 그녀를 둘러싼 자연이, 그 나라가 부러워진다.

매사냥은 나를 인간이라는 사실의 맨 끝자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지점을 지나서 인간이 아닌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다. 비행하는 매, 매를 쫓아서 달리는 나, 깊고 구불구불한 무늬를 이루는 땅과 하늘이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을 철저히 차단해서, 앞으로 30초만 중요할 따름이다. (3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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