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 2013/08/30 23:09 by 카피올라니

줄리안반즈의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고 있다.
플로베르의 연구가인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가 작가에게 영감을 준 박제된 앵무새를 찾아나선 가운데 작가의 삶과 사랑,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독특한 형식을 가진 '소설'이다. 플로베르 전기 형식을 띄었으되 중간에 전기작가의 생각이 적극적으로 피력된다. 독특한 형식을 가진 소설인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 읽는 내내 내가 플로베르를 읽었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서 흥미로웠다.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을 읽은 건 중3 겨울방학 때 동생과 함께 놀러간 작은아버지 집에서 였다. 세계문학전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서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사촌들은 다 초등학생이라 머물렀던 내내 공원에 놀러갔던 딱 하루를 빼고 책만 보다 온 것 같다. 챠타레 부인을 익히 알고 있었던 나는 책꽂이에서 보바리부인을 본 순간, (빨간책을 발견한 중딩..)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무척 흥분했었다. 마차씬은 기억난다. 아마 목이 바짝 타들어가는걸 참아가며, 침을 꿀꺽 삼키며 밤새 읽었겠지. ㅋㅋㅋ 

잠시 내용을 확인하려고 찾아보고 놀랜 사실은.. 내가 그동안 보바리부인의 상대 남자가 줄리앙인줄 알았다는 것. 보바리부인의 상대남은 레옹이었다. 줄리앙 소렐은 <적과 흑>의 주인공. 그러고보니 내가 그 때 <적과 흑>도 봤었나보다. 두 책이 뒤섞여서 새로운 소설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니 근사한데? 줄리앙은 레옹보다는 좀 더 사회적이고, 지적이다. 안나카레리나의 브론스키보다 더 매력적인 이미지다. 나에게는...

그런데 내가 지금와서 생각나는 일은 보바리부인이나 줄리앙소렐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왜 그 때 거길 갔을까???
방학이었고, 겨울이 지나면 고등학생이 될 것이었다. 작은집은 대구였는데 그 때 작은 어머니는 셋째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옥상 위에 널린 기저귀를 걷어다가 같이 앉아서 개켰던 기억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거나 산후조리가 끝났다 해도 갓난애기가 있었다는 얘긴데... 우리 엄마 아버지는 왜 우릴 거기에 보냈을까?

일주일 쯤 지난 후에 양 쪽 집에 싸움이 나면서 우리 자매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밥을 먹고 내가 설겆이를 하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보시고 '오~ 네가 설겆이를 하니?' 하셨다. 그러니까 작은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값은 해야지."
그래서 두 분이서 부부싸움을 하셨는데 어쩌다가 우리집에서 부부싸움 내용을 알게 되셨다.

설겆이야 뭐 당연히 집에서 하던대로 했던 일이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별 다른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제 밥값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걸 작은어머니 입을 통해서 들으니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른들 싸움의 중심에 서게된 나는 얼른 치고 빠지면서 사람은 자고로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셋째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집에 왜 우리 자매를 보내신 것일까? 도와주라고? 음... 그랬다면 설겆이 얘기가 나왔을 때 서운해 하시면 안되는 거였는데 ... 아니면 방학이니 애기 낳은 작은 집에 가서 놀다오라고? 음... 아 뭐야...

내가 지금 그 나이가 되었지만 어른들 세계는 정말 모르겠다.
어쨋건 난 일주일 내내 지루해서 또아리를 틀면서 책만 읽어댔고 설겆이는 레저 정도로 즐겼을지도 모를 일인데 ... 밥값이라는 말 하나 때문에 양 쪽에서 포화가 오고 갔다. 내가 모르는 거대한 갈등의 빙산이 어두운 수면 아래에서 침잠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도 모르고 <보바리부인>을 읽으며 성적환타지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일까? 음.. 나에겐 꽤 중요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어른이 되면 더 중요한 일들이 설겆이마냥 하루에 세 번 씩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살아보니... 어우... 피곤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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