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2012/08/30 00:08 by 카피올라니

이 책은 '긍정의 배신'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푸어 생존기다. 2000년을 전후 해서 웨이트리스, 호텔 청소부, 월마트 판매원 등으로 일하면서 몸으로 겪은 저소득 계층의 현실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생물학 박사 출신 사회운동가의 '위장취업 체험기'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 시간당 6달러나 7달러를 받아서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점.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 수 없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일해야만 하고(이혼하거나, 미혼모인 경우는 절대 빈곤에 내몰린다.) 여러 명이 침대를 돌아가며 쓰고, 거실 소파를 자는 시간만 세놓기도 한다는 것.(참, 이렇게까지...) 처음 책을 잡았을 때 미국의 '빈곤' 문제는 강건너 이대감댁 불구경이었는데 읽다보니 미국처럼 풍요로운 사회에서 이렇게 절대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었나 하는 생각에 놀라웠다. 

또 하나 이 책이 놀라운 이유는 저자가 저임금 일자리를 찾고 거기서 일하면서 겪은 시련 뿐 아니라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자신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드러낸 것이다. 자신에게서 경력과 높은 학력을 빼고 나면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까지 인정한다. 광산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광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실제로 월마트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자신보다 심술맞고, 교활하며, 한 번 앙심을 품으면 잘 풀지 못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덜 똑똑했을지도 모른다고...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모른다고... 노동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직접 체험해보지 않아도 너무 생생해서 겁이 날 지경이다.

"고도로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시각적 특성 때문에 빈민들은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tv나 잡지 표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볼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 마주친다 해도 얼마만큼 가난한건지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버렸다. 매일의 오락은 물론이요 정치적인 선언이나 토론, 지적인 노력에서도 소외되었다. 하지만 워킹 푸어라 불리는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박애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고, 남의 집을 쾌적하고 광이 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은 수준 이하의 집에서 산다. 그들이 궁핍을 견딤으로써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고 주가가 올라간다. 워킹푸어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 모두를 위해 익명의 기증가, 이름없는 기부자가 되는 것이다." 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그녀는 그녀의 자리로 돌아갔고 미국은 그녀의 책에 열광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빈곤문제를 조명한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2012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했던 저임금 노동들을 떠올렸다. 그 때 만났던 사람들도 생각났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만큼 피로에 쩔어서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멍청하고 일을 못해서 그러고 살고 있는걸까?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죄책감과 수치심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덧글

  • sonny 2012/08/30 00:12 # 답글

    나아짐이 없고, 살아나기 위해 일을 하는 삶, 그들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그런 삶으로 내모는 사회에 대해 분노와 죄책감을 느껴야 합니다. 정말 그래요. ㅠㅠ
  • 카피올라니 2012/08/30 10:00 #

    2013년 4인가족 기준 최저생계비 155만원. 하지만 2013년 최저임금 4860원(월급여로 환산하면 101만원)으로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저소득층의 주거비 비율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생계비 산출도 비현실적이지만 체감물가로 보면 말이 안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기형적이라...갈수록 계층 간에 유리벽이 두터워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 푸른미르 2012/08/30 11:27 # 답글

    뭐.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힘들겁니다.
    다들 말은 안하지만 직업을 일종의 신분으로 보잖습니까.
  • 카피올라니 2012/08/30 15:40 #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가치관도 바뀌지 않겠죠. 계몽해서 될 일도 아니고... 이미 학력과 직업은 카스트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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