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채식을 포기한 이유. 2012/08/29 21:30 by 카피올라니

언젠가 여기 블로그에도 밝힌 바 있는데 남편이 채식을 했었다. 1년 6개월 정도.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고 심리적 정치적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고 육식을 겁나게 좋아하던 평소의 식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바람에 식구들 모두 우왕좌왕하기도 했었다. 6개월 쯤 지나고서 많은 부분 정착되었고 식단도 안정화 추세로 들어섰다. 처음엔 살이 많이 빠지다가 안정이 되니 예전 몸무게로 다시 돌아갔고 남편은 '베이킹'이라는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만 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달라진게 있다면 얼굴 빛이 맑아지고 남편 몸에서 땀냄새 같은 게 나지 않았다. 대신 성격은 더 예민해지고 특히 맛,냄새 이런 것에 대해 아주 예리한 분석을 했고, 확신했다. 식구들도 덩달아 고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지만 채식만 하는 식구를 위해 고기를 줄인 예산으로 유기농 곡물과 야채들에 입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식비는 줄지 않고 채식을 포기한 지금 입맛만 높아져서 엥겔계수가 치솟고 있다.ㅠㅠ

6개월 전 쯤에 남편은 직장 의료보험에서 하는 건강검진을 했는데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다. 이상했다. 고기를 전혀 안먹는데???  200 이하가 정상 범위인데 500 가까이 나왔으니 걱정이 되었다. 다시 검사를 했으나 마찬가지. 의사 말이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밥, 빵, 면 이런 것을 줄이라고 했다. 고기를 안먹으면서 밥과 빵의 소비량이 많이 늘은 것은 사실. 헐 ~ 채식하는데요...그럼 풀만 먹어야 하나요?  아...네... 그러면 살빼시구요, 채식을 포기하시고 고기를 드시지요. 네???  명쾌하고도 단순한 해답. 채식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들 있어요. 이런 분들은 고기 드셔야 합니다.  

그래도 그럴 수야 있나. 열심히 운동하고 탄수화물을 줄이면서 야채 섭취를 늘렸다. 병원 재검 3주전. 혹시나 해서 보건소에서 피검사를 해봤는데 허걱.. 수치가 600이 넘은 것이다. 정상 범위의 3배. 이게 어떻게 된거야. 열심히 식이요법했는데... 식이요법을 포기하고 약을 먹는 방법이 있지만 그 약이 간에 안좋다해서 될 수 있으면 약을 안먹으려고 조절한 건데...

채식하는 사람이 먹는 곡물과 야채 중 곡물 섭취를 줄이면 '소'의 식단과 비숫해진다. 어쩌지?? 그럼 할 수 없는거 아닐까... 이러면서 나는 야금 야금 동물성 단백질을 식단에 섞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키지 않았겠지만 받아들였고 대신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했다. 초콜렛, 탄산음료 끊고, 빵, 밥(현미)은 평소의 30%. 모든 식품에서 당 관련 퍼센트를 확인하고 무가당만 선택했다. 당이 안들어간 제품을 찾기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주일에 5일을 운동하고 직장에서 먹는 식사는 탄수화물을 피할 수 없으니 밖에서 탄수화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으면 집에선 두 끼 정도 무탄수화물 식사를 했다.

3주가 지나고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머릿 속에 났던 지루성 피부염이 좋아졌고 신기하게 배가 홀쭉해졌다. 채식을 했어도 배는 어찌하지 못했었는데 내장 비만의 주범은 탄수화물인가보다. 덩달아 비숫한 식단으로 옆에서 식사를 했던 내 배도 호올쭉~ 해졌다. 오랜만에 간 친정에서는 3주 만에 변한 부부의 외모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피검사 결과 3주 만에 600에서150. 완전 정상.

남편은 타고난 체질이 탄수화물 대사에 이상이 있어 채식을 하기 힘든 체질이었던 것이다. 건강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로 건강 때문에 채식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는 것.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채식을 포기하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기를 많이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채식 식단 고민을 따로 안해서 내가 좀 편해졌다. 이젠 예전처럼...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되는대로 먹고 산다. ^^


덧글

  • 푸른미르 2012/08/30 11:33 # 답글

    헤에.... 고기 먹어서 좋은 사람이 있고 야채 먹어서 좋은 사람도 있고....
    새삼 인체의 신비를 느끼는군요.
  • 카피올라니 2012/08/30 19:52 #

    그러게요...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옛날 스님들 중에도 분명 비숫한 체질을 가지신 분들이 있지 않았을까... 소도 여물먹는 소보다 곡물 사료 먹는 소가 일찍 죽겠구나...(수명 다하기 전에 잡아먹히지만) 별 생각이 다 들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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