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쿡스 투어. 앤서니 보뎅. 2012/03/06 17:53 by 카피올라니

몇 년 전에 푸드 네트워크인지, 내셔널지오그래피인지에 즐겨 보던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키 크고 껄렁껄렁한 요리사가 세계를 돌면서 그 지역 로컬 푸드를 먹어보고 주방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재료를 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을 맡은 요리사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가식적이지 않고, 느끼하지 않아서 좋아했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개져서 헛소리 해대며 토하는 것도 본 것 같다. 그걸 보니 괜히 친한 기분.

한 번은 알래스카 에스키모(이누잇)들의 물개를 먹는 자리에 동참한 것을 봤다. 원래 에스키모라는 말은 '날고기를 먹는 천한 사람'이라는 말로 외지인이 붙인 무식한 표현이다. 물개 한 마리를 집안에 들여 놓고 솜씨 좋은 장정 몇 명이 반원형 칼을 들고 분해에 나섰다. 물개 고기의 가장 핵심은... (남자들은 이상한 상상을 하지 말지어다.) 물개의 눈알이다. 물개의 눈알은 두 개. 하나는 그 대가족의 가장 어른이신 100살이 가까운 상할머니께 정중히 바쳐졌고, 나머지 하나는 그 집안의 아주 귀한 손님이신 진행자에게 주기로 가족들이 상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접시에 눈알이 땡그르르.. 끈적끈적하고 느른한 액체와 함께 손에 손을 거쳐 그에게 전해졌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족들에게 자신을 선택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나머지 물개 눈알을 먹었다. 그 프로그램은 혐오식품을 먹게하고 그걸 가학적으로 즐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맞겠지?) 물개가 이누잇들에게는 어떤 존재인지... 종족을 보존할 수 있게 한 고마운 식량이었고 재산이었다는 것을 잘 아는 진행자가 그들과 함께 하는 감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앤서니 보뎅.

'쿡스 투어'는 방송에서 하지 못한 자신의 얘기를 함께 들려준다. 베트남 편을 보다가 .... 베트남의 황홀한 맛에 반해 영원히 여기서 살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그가 네이팜탐에 화상을 입은, 폭탄에 팔과 다리를 잃은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고선 방송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호텔에서 먹지도 나가지도 않고 축축한 눈으로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걸까?' 라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던 얘기를 읽고나니... " 이봐 앤서니. 당신은 날 배신하지 않는군."  이라고 얘기하며 옆에 있다면 "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포르투갈에 가서 돼지를 직접 잡는 장면을 목도한 그가

" 나는 수화기를 들 때마다, 식재료 주문서에 줄을 찍 그을 때마다, 산 생명을 죽음으로 인도한 셈이다. 그러나 내 주방에 도착한 것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어이 토니, 왜 하필 나야? 응?' 같은 눈빛을 쏘아 보내는 사체가 아니었다. 나까지 그런 꼴을 볼 필요는 없었다. 청결한 상자나 비닐 랩으로 싼 포장육만이 내가 저지른 범죄의 유일한 증거였다." p40
 
" 난생 처음 살아있는 고기를 눈앞에서 보기도 했다. 그 경험을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그때까지 막연히 '재료'로 부르던 것을 한층 더 신중히 여기게 되었다." p57

"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평범한 도시인의 식탁에 빠진 것이 무엇인지 밝혀낼 작정이었다.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 가족이라는 요소. 눈앞의 먹을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의 잔혹성. 전통음식을 잃어버릴 바에야 시대의 변화에 맞서겠다는 의연한 자세. 나는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가서도 이러한 가치들을 찾고 또 찾고 싶었다." p58

인용한 부분 때문에 그가 무척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긴 하나 알콜 의존적이고 한 때 약을 하다 치료를 받느라 고생한 전적도 있는 그는 대개는 무모하고 감상적이고 엉뚱하다. 읽는 내내 풋~ 하고 웃은 적이 여러 번. 그가 맛본 음식에 대한 표현. 그것에 대한 나의 평가는... 월드 챔피언 감이다. 오... 최고다. 책에 미뢰가 달려있는 듯 하다. 조금씩 맛보면서 먹는 게 아니라 배가 부르기 전에 단숨에 먹어치워 내 혀의 느낌을 뇌에서 느끼는 쾌감으로 바꿔 간직하고 싶을 만큼. 이 남자, 요리만 잘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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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onny 2012/03/06 21:52 # 답글

    이 사람 글도 잘 쓰지요. 좋아라 합니다. ㅎㅎㅎ부러워요.

    저도 그처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 많은 나날이네요 :)
  • 카피올라니 2012/03/07 08:45 #

    저도 해보고 싶어요. 남의 돈으로 여행하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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